본문 바로가기

정보

[연재] 한국 개발자들을 위한 영어 강의 - 2. '5형식'과 '8품사'에 대한 비판(2)

출처 : https://www.facebook.com/groups/engfordev/permalink/645871465464682/


세상의 모든 언어는 결국 '명사'와 '동사'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언어가 조금씩 다른 이유는 그 명사와 동사를 '엮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언어에 있어서 '명사'나 '동사'가 의미하는 건 '내용(content)'입니다. 그 내용을 엮는 이유는 아무래도 효율적으로 더 많은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서인데, 각 언어간의 차이는 바로 이 '엮는' 방식의 차이일 뿐, 내용의 차이는 없습니다. 따라서 외국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이 '엮는 방식'의 차이를 배운다는 것이며, 이 엮는 방식을 다른 말로 '문법'이라고 합니다. 물론 저는 '문법'이라는 고리타분한 단어를 싫어해서 '통사론'이라는 표현을 주로 씁니다만, '통사'라는 말이 대중적이지 않아서 그저 '문법'이라고 할 뿐입니다. 얘기가 지나치게 추상적이지 않기 위해서, 약간의 예를 들어봅니다:

1. The sun rises.
2. 해가 뜬다.
3. たいようが のぼる.
4. 太阳升起.

1은 영어, 2는 한국어, 3은 일어, 4는 중국어입니다. 모두 동일한 뜻을 나타내는 문장들인데요, 명사인 'The sun', '해', 'たいよう', '太阳' 은 발음과 표기만 다를 뿐, 모두 동일한 뜻을 전달하고 있으며, 그것은 동사인 'rises', '뜬다', 'のぼる', '升起'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1,4가 2,3과 비교해서 보이는 차이가 있다면, 바로 주격조사인 '가', 'が'의 존재유무입니다. 때문에 같은 명사와 동사의 이미지를 전달하는데 있어서, 1,4언어에서는 2,3언어에서 보이는 '격조사'를 쓰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고, 이것을 우리는 '언어적 차이', 즉 '문법적 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언어간에 이런 차이가 없다면, 그 언어는 단지 발음과 표기만이 다를 뿐 같은 언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말이 일본어와 문법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어서, 일본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저 발음과 표기만을 집중적으로 공부할 뿐입니다. 그러나 영어의 경우에는 예에서 보다시피 '엮는 방식'에 있어서 우리말과 차이를 보이니까 우리가 일본어를 배우는 것보다 영어를 배우는 게 더 어려운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만약 언어의 차이에 있어, 의미차이는 거의 없고 단지 '엮는 방식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했을 때, 우리는 '의미'와 '엮는 방식' 중 어느 쪽의 공부에 집중해야 할까요? 또, 아이들이 처음 말을 배울 때, 그들은 '의미'를 탐색할까요, 아니면 '엮는 방식'에 천착할까요? 이 질문의 답은 사실 명확합니다. 당연히 '엮는 방식'이지요. 그것은 유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은 말배우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물우물하는 소리를 내면서, 특정한 박자를 내서 부모님을 웃게 만듭니다. 소리는 아무런 뜻이 없는데, 그 박자나 그루브는 의문문이거나 평서문이거나, 혹은 엄마의 평소 말투와 매우 비슷합니다. 어른들은 그저 재롱이라고 웃어 넘기지만, 사실 아이들의 뇌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박자', 즉 '엮는 방식'에 대한 기적적인 통찰입니다. 아이들은 결국 그 박자에 서서히 익숙해 지면서, 그 위에 '단어'를 얹게 됩니다. 처음엔 '엄마', '아빠'로 시작해서 자신감을 얻다가, 2~4세에 이르러 폭발적으로 어휘를 증가시키면서 깜짝 놀랄 정도로 말을 자연스럽게 구사하기 시작하죠. 그런데 어른들은 외국어를 10년 넘게 공부해도 그 정도의 자연스러움에 결코 이를 수 없습니다. 왜일까요? 어른들은 절대로 그 '박자'를 인식하지도 못하고, 그 박자, 즉 '엮는 방식'에 집중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영어공부한다고하면 십중팔구는 '어휘책'을 듭니다. 그 어휘책의 대부분의 어휘는 '명사'나 '동사'입니다(물론, 부사나 형용사도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논의하겠습니다). 언어간의 차이가 바로 '엮는 방법'에서 나온다면, '외국어를 잘한다'는 말은 곧 '엮는 방법을 잘 안다'는 말과 같습니다. 따라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에 자신의 영어실력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엮는 방법'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거나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거의 정확하다고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엮는 방식' 즉, '문법'에 대한 지식은 어느 정도의 양이며, 또 어느 정도로 잘 알고 있어야 할까요? 일단,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리면, '엮는 방식'에 대한 지식은 전문가 수준으로 아주, 아주, 아주,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속속들이 다 아는데다가 연습도 아주, 아주 많~~~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아주 불가능할 정도로 질리시나요? 이쯤에서 첫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드려야 겠네요. 그렇다면, '엮는 방식'에 대한 지식은 어느 정도의 양일까요? 성문 기초, 기본, 핵심, 종합 영어를 다 합친 정도의 양일까요?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절대' 아닙니다. 그 양은 아주 하잘 것 없을 정도로 적습니다. 그러니까 두 질문에 대한 답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여러분은 영어를 마스터하기 위해서 아주 하잘 것 없는 양의 지식을 아주, 아주, 아주 많~~~이 반복 숙달하여야 합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길 수도 있겠죠. 영어 문법 지식의 양이 그렇게 적다면, 도대체 성문 문법책이나 기타 영문법책에 나와 있는 내용들은 다 뭐란 말이냐? 이런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은 이것입니다: "뭐긴요, 비즈니스죠."

우리는 5형식을 다음과 같이 알고 있습니다:

5. 1형식:주어, 동사
6. 2형식:주어, 동사, 보어
7. 3형식:주어, 동사, 목적어
8. 4형식:주어, 동사, 간접목적어, 직접목적어
9. 5형식:주어, 동사, 목적어, 목적보어

이런 식의 문장분류법은 영국의 문법학자이자 사전편찬자인 Charles Talbut Onions(1873~1965)와 그의 영향을 받은 일본 영어교육학계의 입장을 대한민국 영어교육계가 받아들여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식의 문장 분류의 단점은 일일이 거론하기조차 민망할 정도이지만, 우선 '부사'가 왜 빠져야 하는가?라는 문제와 실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의문문이나 도치문은 무엇인가?라는 아주 근원적이고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1형식은 단순하고, 5형식은 복잡해서, 5형식을 잘 구사하면 원어민스럽다는 아주 잘못된 인식마저 심어줄 수 있습니다. 여하튼 문장은 저런식으로 규범적인 모습을 띠지 않고, 매우 창의적으로 생산된다는 점에서 분류자체를 거부하는 속성이 있으므로, 저런 형식주의적 분류는 머리 속에서 빨리 지워버리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듯 합니다. 

그리고 8품사를 이렇게 알고 있죠. 

10. 8품사: 명사, 대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 전치사, 접속사, 감탄사

이 분류법의 단점도 또한 거론하기도 민망할 정도지만, 일단, 부정사는 어디있나요? 관사는요? 조동사는? 대명사는 명사가 아닌가요? 부정사, 관사, 조동사가 빠져 있는데, 거기에 '감탄사'는 왜 들어가나요? 의문사는요? 게다가 우리가 이제껏 논의한 '언어의 차이는 엮는 방식의 차이고, 외국어를 잘 한다는 건 그 차이를 잘 안다는 것이다'라는 진실에 비추어 봤을 때, 저 중에서 그 진실에 부합하는 품사는 '전치사'와 '접속사' 뿐인데다가, 그 외 진실에 부합하는 다수의 품사들이 빠져 있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저런 식으로 영어에 대한 지식이 범주화 되어 있으면, 영어를 전체적으로 조망해서 내 언어로 만드는 것은 완벽히 불가능에 가까운 것입니다. 

문장의 형식과 문장을 이루는 품사들이 어떤 식으로 외국어 학습자, 특히 한국인 학습자들에게 인식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의 강의의 주제입니다만, 실상 그 진실은 '암기'를 해야 하는 대상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매우 '창의'적이고, 논리연산에 가까우며, 매우 자연스럽고, 직관적이며, 습득도 빠릅니다. 외국어는 내 밖에 있는 신기루가 아닙니다. 언어는 늘 내 안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게다가 내가 쓰고 있는 모국어가 외국어에 방해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오히려 탄탄한 모국어 실력이야 말로 외국어를 배우는 매우 튼튼한 기초가 됩니다. 그리고 한국인의 뇌는 영어를 못하게 되어 있다는 말도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세상에 특정 언어를 못하는 뇌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언어는 지능의 높고 낮음이나 문명의 발달 정도에 관계없이 일정하고 동일한 수준을 갖습니다. 따라서 어느 누군가가 어떤 언어를 할 수 있다면, 다른 누군가도 마찬가지가 가능합니다. 부디 언어에 관한 이상한 말들에 현혹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다음시간에도 언어와 영어의 진실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후기:
2회에 걸쳐 5형식과 8품사를 비판하면서 언어의 원리에 대해 약간 맛을 보았습니다. 요새 저는 개인적으로 출장과 시연회때문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만, 오며가며 늘 영어 강의와 이 강의를 보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저는 미국에 간 적이 두 번 있는데, 두 번의 체류기간을 다 합쳐도 3개월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라서 사실상 한국의 자생적 영어 습득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같은 사람도 있다는 걸 생각하시면서 영어 학습에 용기 잃지 마시길 바랍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