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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한국 개발자들을 위한 영어 강의 - 2. '5형식'과 '8품사'에 대한 비판(1)

출처 : https://www.facebook.com/groups/engfordev/permalink/644494562269039/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중학교 올라갈 때 선물받은 '성문기초영문법'. 그 책의 맨 앞에 있던 형식론과 품사론...모든 지식은 처음이 젤 중요하다고, 나를 비롯한 한국의 거의 모든 학생들은 그렇게 영어를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결국 비극의 시작이었죠. 어떤 이들은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형식과 품사'를 생각하며 영어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영어를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형식과 품사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라고 생각하면서...그리고 그런 생각은 영어를 못한 채로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거의 변화가 없을 겁니다. 


'일음일양지위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번 '음'하고 한 번 '양'하면, 그것이 곧 도다. 동양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말인데요. 우리나라 태극기의 한 가운데 위치한 '태극' 무늬는 결국 이 말을 구현한 상징입니다. 제가 굳이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세상의 모든 지식은 바로 이런 '단순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것은 '언어'도 예외가 아니라서 입니다. 단지, 음과 양만으로 주역은 64괘를 만들고, 컴퓨터는 0과 1만으로 세상을 지배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바이너리(binary)한 속성만으로 모든 논리 연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사람이 바로 'boolean'값으로 유명한 조지 부울(George Boole)입니다. 따라서, 지식의 한 분야에 불과한 '언어'라는 것도 결국은 '이거냐, 저거냐'로 시작합니다. 다섯가지나 되는 형식과 8가지나 되는 품사로는 언어를 구성할 수 없습니다. 더더군다나 머릿속에 익숙하지도 않은 5가지나 8가지의 기준점을 놓고, 고도의 사고체계를 구성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어서 그런식으로는 '언어의 편재성'이나 '언어의 대중성'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특히 유아(infant)가 언어를 그런 식으로 습득할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일단, 형식이나 품사에 대한 얘기를 잠시 옆으로 밀치고, '언어' 자체에 대한 얘기를 좀 하도록 하죠. 인간은 사고를 '문장'으로 하지 않고, '이미지'로 합니다. 어쩌면 '이미지'를 풀어 설명한 것이 '언어'겠지요. '이미지'를 굳이 풀어 설명하는 이유는 '통신(communication)'때문입니다. 교류할 이유가 없다면, 언어도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언어라는 것은 결국 각자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전달받기 위한 공통의 프로토콜(tcp, ip, ftp, http 같은)입니다. 그런 불변의 약속을 통해 상호 통신의 무결성을 최대한 확보하려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말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런 각각의 다른 문장들 속에는 변하지 않는 쳬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런 단순하고 변하지 않는 체계를 가지고 다양한 표현들을 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단순한 원리의 무한한 확장이라는 기호 논리의 시조는 데카르트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그것이 언어에 적용된 것은 몇 십년 전의 일입니다. 우리가 배우는 영어 교육은 그 이전의 모습, 그러니까 '개별언어의 특징을 완벽히 기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 덴마크인 '오토 예스퍼슨(1860~1943)'식의 사고에서 기원합니다. 그 때는 언어의 난해성에 거의 백기를 든 상태라 최대한 근사치로 언어를 묘사할 뿐, 그 원리를 파악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5형식, 8품사같은 것이 나오는 거지요. 우리는 지금 5나 8도 많다고 하는 거지만, 100년전의 언어학적 입장에서 보면, 5, 8은 지나치게 적은 숫자입니다. 


인간 사고의 '이미지'성에 대해 좀 더 얘기해 봅시다. 뇌는 뼈 속에 갇혀 있는 이유로 외부세계를 직접인식하지 못합니다. 때문에 오감을 이용해 주변을 파악하고 근육을 통제해 행동을 결정합니다. 눈, 코, 귀, 입, 피부를 통해 전달된 전기적 자극은 뇌에서 연산되어 하나의 이미지로 구성됩니다. 우리의 등을 누군가 찌르면, 우리는 피부에 뭐가 닿았을 때의 반사적 행동과 더불어 머리 속에서 누군가 등을 찌르는 이미지를 구성해 냅니다. 과거에 송곳에 찔린 적이 있는 사람은 그런 경험적 특성과 당시의 감정까지 소환해 내어 이미지를 만들죠. 이런 과정은 매우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자, 그렇다면 그 '이미지'는 정적 이미지(사진)일까요? 아니면 동적 이미지(동영상)일까요? 이러 질문은 마치 '꿈은 흑백이냐, 칼라냐?'라는 질문과 비슷하게, 답하기가 어렵습니다만, 바로 이 질문에 '언어 형성'의 기본이 들어 있습니다. 


현실세계에서 '산과 들'의 경계는 모호합니다. 들이 조금 높게 솟은 게 산이죠. 따라서, 어디서부터 산이고, 어디서부터 들이다하는 것은 그것을 구별한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결정하는 바입니다. 사람, 즉 사람의 뇌는 구성된 이미지에서 그런 것들을 구별해 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범주화(categorization)' 능력이라고 합니다. 즉, 이미지에서 특정한 한 부분을 골라서 그것을 하나의 실체로 인정하고, 개념짓고, 이름 짓는 능력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강력한 본능이라서, 성서에서 하느님이 아담을 만들어 놓으니 그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일이라고 묘사될 정도입니다. 그렇게 이름 붙이는 본능, 그 능력을 바탕으로 인간은 공간의 모호성과 시간의 흐름에서 '개체(oop식으로 class)'를 뜯어내어 구별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뜯어낸 개체의 복제품들(instances)과 그들끼리의 상호작용(event)으로 세상을 규정하고 정의합니다. 이렇게 인간은 세상을 인식하고, 이것은 본능이며, 이런 방식이 오직 논리로만 표현된 것이 바로 '언어'입니다.


했던 질문을 다시 반복해 봅시다: "뇌의 이미지는 사진일까요, 동영상일까요?" 아마 후자가 정답일 것입니다. 저도 뇌를 뜯어보지 않아서 알 수는 없지만, 동영상을 멈춰놓으면 이미지가 되니까, 이미지는 결국 아주 짧은 동영상이라고 할 수 있고, 때문에 '사진'이라고 답하는 것보다 '동영상'이라고 답하는 것이 편리하고, 보다 포괄적인 선택일 수 있습니다. 우주는 태초 이후로 멈춰 있는 법이 없고, 늘 사인(sine)파동을 변주하며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그런 sine스러운 패턴을 일정하게 잘라놓은 게 바로 '시간'이므로, 시간을 가정하지 않은 세상이란 아마 존재할 수가 없을 것이고, 그런 특성이 뇌의 사고 방식과 그것을 계승한 언어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시간을 묘사하지 않는 언어는 없습니다. 


자, 이제 약간 정리를 해 봅시다. 이제까지의 논지를 요약하면, 뇌는 이미지를 만들고, 그 이미지는 동영상이며, 그 동영상은 객체와 그 객체들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런 특성이 언어에 그대로 계승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언어 교육에 필요한 핵심단어 둘을 꼽으라면, 곧 "객체"와 "상호작용", 다른 말로 표현하면, "범주(category)"와 "시간(time)"이라고 할 것입니다. 글 초반에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라고 했습니다. 때문에 동양사상은 '음(yin)'과 '양(yang)'의 두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태극기 모서리의 4괘는 음(--)과 양(ㅡ)을 쌓아서 만듭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은 이렇게 단순하게 시작해서, 이런 단순한 것들이 단순한 원리로 모여서, 겉보기에 '복잡'한 형태를 구성합니다. 모든 지식은 알고나면 별 것도 아닙니다. 그 이유는 아무리 복잡해 보이는 것들도 알고보면 단순한 몇가지가 중첩된 것에 불과하거든요. 언어도 지식일진대, 그것도 뇌의 산물일진대, 그런 기본적인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동양철학의 음과 양처럼, 부울 대수학의 참과 거짓처럼, 언어를 이루는 두 가지 요소는 '객체'와 '상호작용'이며, 이를 언어 내부의 명칭으로는 이렇게 부릅니다:"명사"와 "동사"


후기:

일요일 아침이네요. 주말부부인 저는 이곳 대전에 내려오면 개인적인 시간을 거의 가질 수 없습니다. 마누라님이 너무 무섭거든요. 오늘은 새벽에 일어나 이제껏 글을 썼습니다만, 안방에서 드디어 기척이 들리니, 일단은 여기까지만 쓰려고 합니다. 아직 초입에 불과하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유익하게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다소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인데, 어렵게 느껴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네요. 여하튼 개발자 영어에 개신 개발자 여러분, 좋은 주말되시길 빌면서, 다음에 뵙겠습니다. 빠이...